루이비통의 역사와 재미있는 사실

     

    '루이비통'은 남자인 저도 참 좋아하는데(하나도 없음) 여자분들에게 이 브랜드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여사친 친구가 20대때 친구 3명이랑 유럽에 놀러 가서 루이비통 매장에 간 적이 있는데 3명 모두 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사고 나올 때 프랑스 점원이 '아시안 공주님들 집에 조심히 가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나 아시아 쪽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루이비통 가방을 거머쥔 아시아인들이 많이 보이는데 유럽 쪽이나 제가 사는 오세아니아 쪽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만큼 명품 가방은 상유층의 전유물이라는 이야기죠.

     

    오늘은 친구 3명을 아시아 공주로 만들어준 럭셔리 명품의 대명사 루이비통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통 (Luis Vuttion)의 역사

     

    럭셔리 트렁크로 시작된 루이비통(Luis Vuttion)은 샤넬, 에르미스와 함께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브랜드이다.

     

    출처: 위키백과 루이비통과 회사 사람들

     

     '루이비통'은 16살 때부터 트렁크 장인이 되기로 결심했으며 자신이 근무하던 곳에 여행객들이 장인들에게 개인 소지품을 안전하게 짐을 쌀 수 있는 방법을 의뢰했는데 루이비통은 이때 큰 신임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1854년 트리아농 캔버스로 된 가볍고 밀폐된 바닥이 평평한 트렁크를 제작하였다.

    이 트렁크가 나오기 전 영화, 만화에서 많이 본 뚜껑이 둥근(쉽게 말해 보물상자) 형태의 트렁크가 주를 잇고 있었는데 트렁크 쌓기를 편안하게 하고자 고안이 되었다고 한다.

     

    다미에 캔버스 캐빈 트렁크, 그레이 트레아노 캔버스 해트 박스 (사진 출처: 루이비통)
    천연 소가죽 아이디얼 트렁크 펼치기 전 후
    그레이 트레아농 캔버스 곡선 트렁크, 맞춤 제작 다미에 캔버스 가방
    해당사진 출처: 루이비통 국내 공식 홈페이지

     

    루이비통 트렁크는 이런 디자인으로 인해 성공적인 판매를 하였으나 이내 모방하는 회사들이 우호죽순 생기면서 차별화를 두기 위해 베이지와 갈색 주무늬를 이용한 디자인으로 변경하였다. 

     

    그 후 '루이 비통'이 죽고 아들 '조루주 비통'이 물려받으면서 루이비통의 L과 V, 그리고 일본 판화 프랑스 아르누보에서 영감을 받은 꽃과 벌을 이용해 모노그램을 만들었는데 귀종 상류층들을 매료시켰으며 본격적인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었다.

    루이비통은 명실상부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였으며 현재까지 불황에도 판매량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루이비통(왼쪽) 과 그의 아들 조루주 비통(오른쪽) 

     

     

    물에 빠졌을 때 루이비통 트렁크는 구명조끼 역할을 한다.

     

    18세기에 루이비통의 진면목은 배를 타고 대륙을 이동하거나 여행을 할 때 발휘된다는 말이 있다.

    그 시대엔 당연히 비행기가 없어 배로 움직여야 했는데 화물선뿐만 아니라 여객선이 배가 가라앉는 등의 해양사고가 빈번했다.

     

    트렁크 가방 4개를 잘 엮으면 보트로도 활용할 수 있다.

     

    18세기만 하더라도 구명조끼나 구명보트의 개념이 부족하여 사고사로 죽는 인원이 많았으며 이에 루이비통은 해양사고가 생겼을때 루이비통 트렁크가 물이 들어 오지 않도록 설계하여 응급시 구명조끼나 보트의 역할을 하도록 제작이 되었다.

     

    혹시라도 바다에서 사고가 났다면 주변에 루이비통 트렁크가 있는지 확인 해보도록 하자.

    (*태어나서 루이비통 트렁크는 루이비통 매장에서 밖에 보지를 못했다.)

     

     

    루이비통은 이월상품이 없으며 재고는 모두 소각된다.

     

    루이비통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이어온  유지비법 중 하나가 바로 NO 세일, NO 이월상품, 남는 상품은 기자들을 초빙한 이벤트를 통해 100% 소각한다는 회사 방침이며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파이어 쇼'

     

    루이비통이 이렇게 소각하는 이유는 '명품은 기다린다고 가격이 싸지지 않으며 항상 제 값을 주고 사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SPA 상품들은 늘 세일을 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세일 가에 살 수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로 생각한다고 하며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구입한 값 비싼 물건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가 된다는 만족감과 충성도를 느끼게 된다.

     

     

    루이비통 자물쇠 부심! 탈출 마술사에 도전!

     

    오늘날 대중적인 지문인식, 홍채인식이 사생활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 당시 자물쇠는 개인 물품을 보호하기에 필수품이었다.

    루이비통 트렁크를 가진 사람은 부유층으로 인식해 도둑들의 대상이 되어 손쉽게 털리는 걸 보고 이를 해결하고자 텀블러 자물쇠에 많은 투자와 공을 들였다.

     

    마침내 1896년 루이비통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자물쇠에 자신감을 갖고 당시 헝가리 출신 마술사이자 탈출 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해리 후드니'에게 신문을 통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루이비통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텀블러 자물쇠 (고급스럽고 멋져 보인다) 출처: 루이비통 공식 홈페이지

     

    루이 비통의 트렁크와 자물쇠를 이용해 해리 후드니가 탈출할 시 일정의 돈을 지불하는 방식이었지만 해리 후드니는 결국 이에 응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파생된 광고 효과는 엄청났다고 한다.

    (* 해리 후드니가 루이비통의 제안에 응하였고 탈출에 실패했다는 정보는 오보이며 후일담으로 일부로 해리 후드니가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루이비통 기본 가방에 자물쇠가 있는 이유도 자물쇠에 대한 대단한 부심 때문임)

     

    탈출 마법의 아버지! 그럼 어머니는 누구지?

     

    또한 최근에 판매되고 있는 식스 텀블러는 구입 시 잠금장치 고유번호가 있는데 잃어버렸을 시 구입 당시의 고객정보와 동일하면 새로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루이비통은 수공예 제품이다!?

     

    루이비통을 제작하는 시간은 가방 1개당 대략 7일 정도가 소모가 된다고 한다.

    TV광고를 통해 루이비통은 자신들의 수공예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표현하였는데 프랑스에서 과장 광고 위반으로 벌금을 먹은 적이 있다. 

     

    가방에 일정한 파츠들을 공장을 통한 대량 생산하고 마지막을 장인들이 마무리한다고 알려졌지만 루이비통에서 그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라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고 한다.

    개인 적으로 장인들이 만든 것보다 제품에 대한 퀄리티의 일정 수준은 아마 공장 제품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루이비통과 나치는 협력관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에 루이비통은 지금과 같이 잘 나가는 전통 럭셔리 브랜드였다.

    나치는 자기들이 입는 제복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게끔 디자인하는 등 자신들을 브랜딩화 시키는데 능력이 탁월했다.

     

    어떻게 하면 일반 군중들에게 위화감과 공포감을 줄 수 있을지 이 나치복에서 엿볼 수 있다.

     

    많은 패션 브랜드들에게 나치와 함께 하자며 일을 제안했지만 굴복하지 않고 대부분 거절하거나 스스로 폐업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루이뷔통'은 그들에게 협력하고 자기 분야에서 남다른 권한을 얻어 라이벌이 없는 시장에 독무대를 펼쳤다고 한다.

    잘 나가던 브랜드가 지금까지도 잘 나가는 게 어쩌면 그때 나치의 제안에 수용한 원인도 있지 않을까?

    그때의 잘못된 선택이 루이비통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LVMH는 무엇인가?

     

    루이비통(Luis Vuttion)은 뉴욕에도 진출하였으나 가족 경영의 한계를 부딪히게 되자 1987년 샴페인과 코냑 제조회사인 모에 헤네시(Moet Hennesy)와 합병하여 LVMH를 설립하였다.

    이후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크리스챤 디올, 지방시, 겐조, 겔랑, 태그 호이어, DNKY, 펜디 등을 합병하면 세계 최대의 럭셔리 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여러분들이 아는 저 브랜드들은 모두 루이비통 LVMH 그룹에 속해있는 산하 그룹들이라는 것이다.

    통상 루이비통이라 그러면 브랜드 하나만을 갖고 있는 회사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LVMH는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이다.

     

    현재까지 새로운 브랜드 회사들을 자회사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활발히 하고 있다.

     


    마무리

    우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보던 루이비통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각 분야마다 제일 잘 나가는 브랜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줍니다.

    참고로 루이비통은 프랑스 매장 현지에서 사는 게 가장 저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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